오시타리 켄야는 누구보다 평범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교육과정을 받으며 평범하게 성장한 그를 그럼에도 평범이란 반열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연인이었다. 한 살 연하의 연인은 중학교 시절 같은 부의 후배였다. 졸업 후 자연스럽게 끊겼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던 오시타리였지만, 지금까지 우연히 만났던 그 날 연락처를 물어본 것을, 자주 연락하고 지낸 것을, 그리고 사귀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 연인의 이름은 자이젠 히카루, 성별은 오시타리와 같은 남자였다.

* * *

오시타리는 제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현실 앞에 벙쪄있었다. 계속되는 연강에 지쳐 축 늘어진 몸을 억지로 이끌고 "다녀 왔디." 방문을 열자 눈앞엔 익숙지 않은 복장의 자이젠이 서 있었다.

"뭐…. 뭐고?"

"켄야 씨, 이런 거 좋아한다 아닙니꺼?"

그의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검은 세라복에 빨간 리본까지 곱게 맨 자이젠이 담담히 대답했다. 힐끔 곁눈질로 내려다본 치마 아래로 쭉 뻗은 맨다리 끝엔 하얀 학생용 양말이 발목께에 한두 번 단정히 접힌 채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귀기 전엔, 그러니까 이런 관계가 될 줄 몰랐던 때엔 가볍게 전 애인 이야기도 하고 취향도 이야기하고 그랬었더랬다.

진부한 말이지만 오시타리는 자이젠이 자이젠이라 좋았다. 그가 여자였어도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시타리에게 자이젠의 성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사실 오시타리는 자이젠과 사귀기 전엔 남자와 사귄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평범한 일본의 건아였다. 자연스럽게 자이젠 또한 그럴 것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오시타리는 그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하는 여자 취향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그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고백해오기 전까진 말이다.

* * *

자이젠과는 우연한 기회로 재회했다. 변한 점 없이 그대로인 모습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인사만 꾸벅하고 돌아서서 가려는 자이젠을 붙잡고 연락처를 물어본 건 반가운 마음에서였다. 자주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었다. 그대로인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냉랭하고 쌀쌀맞았지만, 그래도 오시타리와 제법 잘 어울려주었다. 못 본 새에 있었던 일들이나 어떻게 지냈는지 대화하는 것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주로 오시타리쪽에서 먼저 화제를 꺼내고 자이젠은 단순히 대꾸하는 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시타리는 즐거웠다.

"고등학교 여자 교복이 세라복이어가지고 쫌 좋았다."

식사를 끝내고 들어온 카페에서,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여학생들의 세라복을 바라보며 생각났다는 듯이 오시타리가 말했다.

"어떤 점이요?"

"뭐, 세라복 자체가 쫌… 글치 않나?"

여러모로 상상하게 만드는 게. 오시타리의 덧붙인 말에도 자이젠은 그저 흐음,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이럴 때마다 자이젠 또한 그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부실에서 몰래 돌려보던 야한 잡지를 떠올리며 그의 변함없는 취향에 나즈막이 감탄도 했다. 오시타리와의 기억은 2년이 전부였지만 그 2년 동안의 오시타리가 여전히 눈앞에 존재해서 자이젠은 우습게도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다, 고 문득 감성적인 생각을 했다.

별 대꾸 없이 달짝지근한 초코 음료만 홀짝이는 자이젠을 보며 오시타리는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면 자이젠은 본인의 취향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오시타리가 니는? 하고 되묻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그 자체에 큰 흥미가 없어 보였다. 이런 아들이 오히려 취향이 하드하던데…. 씩 웃으며 오시타리가 물었다.

"와? 니는 세라복 말고 딴 게 더 좋나?"

"음…. 네."

순순히 대답해서 조금 놀랐다. 오, 뭔데? 뭔데? 하고 달라붙는 오시타리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다시 초코 음료로 시선을 떨구며 자이젠이 답했다.

"전 남자가 좋은데요."